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널드 럼즈펠드 (문단 편집) == 문제점 == 젊은 시절에는 명석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면모로 호평받았지만, 60줄에 접어든 2000년대 이후에는 주변 조언을 잘 듣지 않는 고집쟁이라는 악평과[* 아버지 부시가([[조지 H. W. 부시]]) 2015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럼즈펠드를) 가까이서 접해본 적이 없지만 인간적인 면모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 뭔지 헤아리고 경청하는 능력이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라 크게 혹평하기도 했다.] 함께 추진 업무에서 구설수가 연잇는 불운을 겪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집중해야 할 상황에 [[이라크전]]까지 전쟁 범위를 넓혀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더불어 국방 예산 악화의 여파로 각종 신무기 계획이 취소-연기된다. 사실, 럼즈펠드는 전쟁 예산 절감을 위해 [[민간군사기업]]들을 정책 차원에서 적극 활용,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45일만에 함락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용병 회사들은 전장이 아닌 '''고지 함락 이후의 전후조처'''에는 예산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현지 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인한 추가 병력 투입에 국방예산이 소요되는 악재가 발생한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작은 정부가 미덕이라는 발상인데 그러자면 국가가 과대한 국가 지출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국방비의 과대지출 역시 죄악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실제 미국의 GDP대비 국방비 지출이 과도하단건 사실이다.] + 여기에 결정적으로 '''본인 임기때 [[오사마 빈 라덴]]을 2번이나 놓쳐''' 세평이 매우 나빠졌다.[* 첫 번째는 CIA가 위치파악까지 다 해놓고 전투부대만 보내면 잡을수 있다고 애걸복걸을 하는데도 외면하여 놓쳤고, 두 번째는 [[프레데터]] [[UAV]]가 빈 라덴 포착에 성공해 그 자리에서 미사일만 발사하면 됐는데 '''미사일 발사권을 지닌 상급자와 연락이 안 돼서''' 놓쳤다. 후자야 본인과는 상관없는 불운이었다지만 전자는 지금도 럼즈펠드 최악의 병크중 하나로 손꼽힌다. 음모론으로는 빈 라덴이 살아서 어그로를 끌어줘야 예산이건 추가 침공이건 할 수 있어서 방생해줬다는 설도 있다.] [[미군]] 항목에 나와있는 최근의 다양한 문제들은 럼즈펠드 역시도 한 몫 단단히 책임이 있다. 럼즈펠드는 미군이 너무 둔하고 느리면서 [[예산]]은 많이 먹는 군대라고 생각했고, 정예화된 소규모 부대에 기동성을 줘서 적은 병력으로 넓은 전장을 통제하는 방식의 전투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신자유주의자 답게 '''군의 완벽한 [[민영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이들에게 정부의 간섭은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허용해서도 안 되는 죄악' 그 자체다. 그러니 국가가 보유한다는 것도 안되는 일이다.] 럼즈펠드의 사상은 미군에 존재하던 기존의 거대한 보급, 지원체계를 줄이고 꼭 필요한 전투병력만 유사시 해외 어디로든지 빠르게 긴급투사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으로, 아이디어 자체는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소위 군살을 깎아내고 지상군은 꼭 필요한 정보수집과 전자전 능력, 그리고 실시간 지휘통신체계와 긴급투사용 소수정예 전투병만 보유하면 되며, 부족한 화력은 정밀유도병기로 무장한 공군과 해군 항공모함 전투단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 럼스펠드의 구상이었다. 이에 따라서 군살이라고 간주된 많은 부분이 [[민영화]], [[아웃소싱]]되면서 럼스펠드 재임기간 동안 [[PMC|민간군사기업]] 분야가 대폭 성장하였다.[* 잘보면 1980년대 [[GE]]의 [[잭 웰치]]가 선도적으로 유행시킨 기업 [[구조조정]]과 유사하다. 수익이 떨어지는 비주력분야는 매각하고, 비핵심적 업무는 아웃소싱하며, 소수 인력의 핵심분야에만 자원을 집중한다는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으로 방만한 기업규모를 줄여서 단기적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실제 럼스펠드의 구상대로 개조된 미군은 이라크 침공이란 단기적 작전에선 놀랄만한 효율을 보여주었지만, 그 뒤의 장기적 점령에선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실제로 미군은 [[걸프전]] 때에 비해 훨씬 적은 규모의 병력으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을 삽시간에 무너뜨리는 것까진 잘 해냈다. 실제로 후세인을 무너뜨린 순간에는 희대의 전략가설이 있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전쟁에 이긴 뒤를 전혀 생각치 않았다'''는 점으로, 통칭 '바그다드 경주'(Race to Baghdad)라고 불린 이 발상에 대해선 뒤에서도 언급되지만 시작부터 반대 여론이 많았는데, 특히 전투 다음에 따라오는 지역점령 작전과 치안유지에서 럼즈펠드가 깎아낸 바로 그 ''''군살'에 해당하는 치안유지 병력이 없어서 망한 것이다.''' 도심지역의 게릴라전에서 [[MLRS]]나 공군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E-8]] 같은 것들도 [[험비]] 타고 다니는 보병 순찰대에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총들고 다니는 병사 개개인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단기적인 전투는 특수부대와 공군만으로 할 수 있지만, 점령은 결국 '''보병이 적의 영토를 군화발로 밟아야 끝나는 것'''인데(다른 해결책도 있는데, 핵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불가능), 럼즈펠드는 그걸 무시했다. 럼스펠드는 장기적인 치안유지와 국가재건 즉 '''"안정화를 위해서는 대규모(약 4~50만 명)의 [[알보병|점령군 주둔병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직접 주둔해야 한다"'''는 미군 장성들의 건의를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공개적으로 비웃었다. 그리고 이것은 뼈아픈 현실로 다가왔다. 애초에 국무부의 외교협상능력도 거지같았는데 현지의 언어와 문화, 정서, 종교, 생활관습, 정치적 세력관계 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우리 미군 킹왕짱이라는 마인드와 들어가기만 하면 후세인의 압제에 시달리던 이라크인들이 자유의 해방자 미군을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란 망상에 빠져서 세밀한 장기점령 준비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전쟁 초기엔 이 말이 맞았다. 워낙 후세인의 압제가 혹독했던지라 바그다드 점령 직후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쌍수들고 환영하는 장면이 대서특필되었다. 즉, 민심도 초기엔 상당히 유리했기 때문에 전후처리만 잘했더라면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낼 기회가 있었건만, 럼스펠드의 무능은 그 기회를 날려먹었다는 것.] 전후 재건은 이라크 석유판 돈으로 미국 기업에 아웃소싱주면 되고, 이라크 망명자들 모아서 임시정부 만들고 총선만 하면 단기간에 친미정권을 중동 한복판에 세워서 미국식 민주주의 정착시킬 수 있다는게 럼스펠드와 [[네오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럼스펠드가 세운 이런 전쟁방식은 현대 미군의 대세가 되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선구적인 업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필요병력 50만을 10만으로 줄인 대신 10만의 민간군사기업의 보조를 받고 1만 대가 넘는 드론을 활용하는 전투는 럼스펠드때는 두 곳의 전장에서 모두 이기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미국의 대외 전쟁은 좋든 싫든 이것 외의 방법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딱지를 붙여서 그렇지, 예비군 팍팍 동원하면 국민이 좋아할 나라가 없고, PMC 사상자는 군인이 아니므로 대서특필되지도 않는 데다가(용병은 수백명이 죽어도 남의 집 자식이니 알바 아니고, 대민범죄를 저질러도 우린 몰라요 할 수 있는 등, 하청의 장점이 있다.), 어느 나라나 핵심 전투병과가 아닌 지원업무의 민간 하청과 병력을 대신하는 기술장비와 드론 활용은 대세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동의 무장세력까지도, 소수의 조직원이 다수의 현지 민간인을 활용하고 저가 드론을 정찰과 공격에 최대한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비슷하다. 어쨌든 드넓은 점령지역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결국 주둔 병력을 왕창 밀어넣거나 아니면 현지인력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력은 얼마 없고, 미군의 보조역할을 할 수 있던 이라크군과 경찰을 점령 직후에 믿을 수 없다면서 해산시켜버렸다. 게다가 이라크와 이슬람에 대해서 교육받지 못한 미군의 對현지인 친화성이란 건 그야말로 최악이고, 점령 초기에 온갖 병크들을 있는 대로 다 친 상태였으며, 게다가 [[국방장관]] 재임 중에 줄여 없앤 군의 [[보급]]이나 복지 등은 전부 [[민간군사기업]]의 [[아웃소싱]]으로 돌렸는데, 이는 이라크 점령 기간동안 벌어진 민간업체의 부조리, 도덕성 해이와 부패 등에 직면하여도 군과 정부가 이들을 쳐낼 권한이 없어진다는 황당한 사태도 벌어졌다. 이 부분은 [[민간군사기업]] 항목에 잘나와있다.[* 대표적인 것인 이라크 전쟁에서 병참의 주계약자인 [[핼리버튼]]이다. 전후 재건사업 과정에 이들의 부정부패와 막장 일처리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였으며, 이라크가 지금처럼 헬게이트가 된데에는 이들이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애초에 계약기간이 사실상 무기한이라서, 미국 정부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대충 요약해보면 철조망치는 작업을 하청→하청→하청, 짬밥 요리하는 것도 하청→하청, 청소하는 것도 하청→하청 하는 식인데, 철조망은 엉망이요 밥은 안나오고 청소부도 없는 상황인데 돈은 나가고 책임소재는 아몰랑 대충 그런 상황이다.] 럼즈펠드가 저런 생각을 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걸프전]]의 성공이 영향을 줬다. '''그러면서 [[베트남전]]의 교훈은 다 까먹었다.''' 걸프전은 점령이 배제되었던 전쟁이었는데, 점령전인 이라크전을 동일하게 생각한 것 자체가 큰 실수다.[* 걸프전은 "형제 아랍국가를 다른 형제국가가 침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공동의 의식이 깔려 다른 아랍국가들과의 협조가 비교적 원만하게 이뤄진 반면, 이라크전은 순수한 점령전이라 아랍국가들의 호응도 얻지 못했고, 결론적으로는 이라크 내의 종파분쟁을 더 악화시킴으로서 전후의 치안문제에 큰 타격을 준 것 뿐이다.] 사실 아버지 부시는 걸프전때 이라크군을 무력화 시키고도 후세인 정부를 끌어내리진 않고 멈출 줄 아는 수완의 보유자였던 반면, 아들 부시는 무작정 악의 축 후세인을 죽이겠다는 다소 유치한 선악관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도 두 전쟁 양상 차이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이라크전을 망친 정치적 책임은 결국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인 아들 부시가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대통령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들일 것인지 예상하고 그 결정은 위험하니 수정하자고 조언하거나, 그대로 실행할거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이 국방장관이었던 럼스펠드에게 있었던 것. 결국 국방 전문가로써의 안목이 매우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고려하지 않았던 전략적인 문제. 지금 시리아가 소수 시아파가 다수 수니파를 억누르고 집권하고 있듯이, 당시 이라크는 소수 수니파가 다수 시아파를 억누르고 집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라크의 수니파 정권을 없애버리고 민주적인 투표를 한다면, 아직 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라크 국민이 다수결로 시아파 정부를 만들 것이고 그 정부는 자연스럽게 미국이 제일 싫어하는 반미,친이란 성향을 가질 것은 예상된 것이었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후 미국이 다양한 일을 했지만 결국 그걸 막지는 못했다. '''잘못된 전략은 절대로 기술적인 우위로 보완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장본인이다.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여러 실책들에서 가장 큰 책임이 돌아가야 할 인물이다. 물론 전쟁의 결정은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진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전쟁 동안 많은 수의 미군을 불필요하게 잃은 것은 명백히 국방성의 수장인 그의 잘못된 정책에 가장 큰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